꺼질 것 같지 않은 여름이 저물어간다. 8월의 달력을 넘기고 찾아온 9월은 비와 함께 시작한다. 어둑한 밤거리에 작은 빗소리가 골목마다 스며든다. 나는 밤거리 빗줄기 사이로 도시 불빛을 머금은 그 작은 물방울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길을 걷는다. 그렇게 뜨거웠고 그래서 고통스러운 여름이었지만, 9월 밤 작은 빗줄기에 긴 여름이 씻겨나가는 모습에 마음 아련해진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아쉬운 마음인지, 아직은 가을 스산함을 맞을 준비 안 된 마음이 서둘러 가을 외투를 찾아 입으려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9월 밤의 비는 여름 소나기처럼 그렇게 화려하고 후련하게 쏟아져 내리지 않는다. 20대 어느날 명동 거리를 우산 없이 걷다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지 못한 일이 있다. 어느 가게 천막 밑에서 비를 피하다 비속에 한없이 피어오르는 거리의 흙내음에 취해서 있는 힘껏 비를 온몸으로 받았다. 온몸이 여름 소나기에 젖어 들고 신발 가득 소낙비가 출렁이기 시작하자 비 맞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졌다. 생각해보니 고작해야 젖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조금 전까지 비 피할 곳만 찾아 허겁지겁 뛰어다닌 나 자신이 낯설어졌다. 조금 맞을 때는 몰랐지만 다 맞아 흠뻑 젖고 나니 비는 피해야 할 고통이라기보다는 그속에서 즐겨야 할 축제 같은 것이었다.
9월의 비를 바라보며 나는 30년 전 그 순간이 기억나서 펼쳐둔 우산을 조용히 접었다. 여름 소낙비처럼 쏟아지지 않기에 조용히 천천히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집으로 향하는 이 길에 맞는 비로는 신발 가득 빗물 찰랑거릴 일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 세찬 바람에 우산살이 부러질까 염려하며 우산을 꼭 붙들고 있던 두려운 마음은 우산을 접고 젖으라며 내리는 비의 뜻 그대로 젖어 들며 맞이하니 조금씩 사라졌다. 9월의 비가 머리에 스미고 뺨을 따라 슬며시 흘러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는 비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었다.
비에 젖지 않으려 우산만 바라보며 바람과 맞서던 시간이 지나가자 걷는 도시의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이 빗물과 섞이며 천천히 흘러내리는 곳곳의 공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도시 불빛과 빗물의 향연은 한순간 머물다 사라지곤 하는데 특히 유리창에 비치는 물빛의 반영은 예술이다. 조명의 색이 빗물에 섞여 새로운 색으로 반짝이는 중에 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잠시 빛을 더해주면 화려함은 그 정점에 이른다. 나는 젖어 드는 줄도 모르고, 그 빛의 공연을 한없이 바라보다 어느덧 자정에 이르러 도시의 빛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하고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9월의 비는 여름 소낙비와 또 다른 점이 있다. 처음 젖어 들 때는 몰랐지만 빗물이 스민 자리에 바람이 스치니 작은 가시 같은 차가움이 바람 든 자리에 머문다. 가을비를 맞아본 것은 수십 년 반복한 일이었지만, 기억력이 나쁜 나는 매년 가을비의 이 스산한 차가움을 잊곤 한다. 어제까지 뜨거웠던 낮의 열기에 적응된 몸은 9월 비와 바람의 차가움에 가끔 소스라치듯 움츠러들었다. 인적이 줄어들고 오가는 차도 보이지 않는 이 시간에 차를 불러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젖은 옷으로 차에 오르면 그다음 손님에게도 기사에게도 폐가 될 거라는 생각에 끝까지 걷기로 했다.
그래도 몸에 든 한기를 떨쳐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아까 걷다 지나쳐온 편의점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다행히 9월이 시작돼서인지 따뜻한 꿀차 한잔을 구할 수 있었다. 양손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병을 잡고 잠시동안 한기를 녹여본다. 멀쩡한 우산을 들고 온몸이 젖어 있는 나를 바라보는 점원의 이상한 시선을 뒤로하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왜 이 지경까지 비를 맞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여, 내일의 나에게도, 밤사이 일해야 하는 편의점 점원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꿀차는 잠시 동안 따뜻했다. 몸의 한기를 씻어내려 서둘러 마셔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다행인 것은 그사이 바람이 잦아들었다. 비는 여전히 흩날리며 내렸지만 바람이 멈춘 거리에 더는 그렇게 견디기 힘든 스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들고 있던 우산을 원래 접혀 있던 선을 따라 한겹 한겹씩 접으면서 걸었다. 생각해보니 이보다 비가 세차게 내리면 다시 우산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조차 지워버리고 내리는 비를 온전히 맞으리라는 마음으로 우산을 접는 동안 마음은 더욱 고요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러는 동안 거리에도 작은 물웅덩이가 하나둘 피어나 있었다. 온 사방에 밤이 짙게 내린 시간 거리 물웅덩이는 작은 꽃처럼 빛난다. 빗물에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그 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꽃에 물어보았다.
“왜 여름은 그렇게 빨리 사라져 버린 거지?”
대답할 리 없는 그 질문은 밤거리를 조용히 맴돌다가 사라졌다.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고 거리에 떨어지는 소리도 점점 커지면서 나의 질문을 삼켜버렸다. 나는 그 빗소리에 파묻혀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힘들고 길었던 여름이었는데, 나는 지금 아쉬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계절이 바뀐다는 건 나에게 항상 불안감을 주었기에 그 불안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바람 같은 질문이었으리라. 태양 아래 빛나던 그 풀잎과, 먼 길 찾아가 갈증을 달래주었던 카페에서 느낀 청량함, 어느 해안 도시에서 맛보았던 여름의 행복한 맛이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 몰랐었나 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조용히 배란다로 나가서 내리는 비를 좀더 지켜보았다. 물방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흐릿했고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밤에도 꺼지지 않고 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 하나가 여전히 머무는 모습에 안도했다. 그 빛는 차가운 비 속에 홀로 서 있는 듯 보였지만, 꺼지지 않고 지켜낼 것이 있다는 듯 반짝였고, 그 모습에 위로 받았다.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바깥 바람은 조금씩 더 차가워지겠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가을 너머 찾아올 겨울, 그 뒤에 다시 올 봄이 있다는 것을 기억력 좋지 않은 나임에도 잊지 않으려 한다. 지난 봄과 여름처럼 가을과 겨울 동안 따뜻한 추억으로 채워둔다면 넉넉하게 추운 시절을 지내고 기쁜 봄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리를 비에 젖어들 것을 각오하고 맞이한 나에게 찾아온 평안처럼, 가을과 겨울도 그렇게 맞이해보려 한다. 계절의 변화가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은 온전히 내 마음이 만들어오는 것을 알기에 젖어드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흘러가게 두려 한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나가고 나면 다시 한번 아름다운 봄이, 맑은 빛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을 알기에 이 가을 내리는 비에 더는 움츠러들지 않으려 한다. 너도,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